지난 글에서는 슈퍼헤테로다인 수신기가 어떠한 이유로 생겨나게 되었는지 설명했습니다.
슈퍼헤테로다인 수신기 -1
라디오를 처음 발명하던 시절, 무선 신호를 받아 듣는 일은 오늘날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초기 무선 통신은 주로 모스 부호를 사용했습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송신기는 낮은 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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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슈퍼헤테로다인의 핵심 개념인 중간주파수(IF)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간주파수가 무엇인가?
중간주파수(IF)는 원하는 신호를 얻기 전에 중간 단계에서 사용하는 주파수입니다. 왜 이런 중간 단계가 필요할까요?
이해를 위해 두 개의 주파수가 섞일 때 일어나는 현상을 수학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라디오 신호가 cos(ω신호*t)형태로 진동하고, 로컬 오실레이터(LO)가 cos(ωLO*t)로 진동한다고 가정합니다. 혼합기에서 이 두 신호를 곱하면 두 가지 새로운 주파수 성분이 생깁니다.
이 식을 보면, 두 신호를 곱했을 때 두 가지 새로운 주파수 성분이 생깁니다.
1. 주파수가 합쳐진 성분: cos((ω신호 + ωLO)*t)
2. 주파수를 서로 뺀 성분: cos((ω신호 - ωLO)*t)
주파수가 합쳐진 것은 원래 주파수보다 훨씬 높으니 처리하기 어려워 필터로 제거합니다. 하지만 주파수를 뺀 성분( | ω신호 - ωLO |은 낮은 주파수를 가지며, 이것이 바로 중간 주파수입니다.
슈퍼헤테로다인 수신기에서는 로컬 오실레이터(LO)의 주파수를 조절해 다양한 입력 신호를 모두 같은 중간주파수(IF)로 변환합니다.
예를 들면 1000kHz 방송 신호를 들으려면 LO를 1455kHz로 설정합니다. 신호 차는 455kHz가 되겠죠.
마찬가지로 1200kHz 방송 신호를 들을 때는 LO를 1655kHz로 설정하여 신호차를 455kHz로 만듭니다.
이렇게 어떤 주파수의 방송을 듣더라도 항상 같은 중간주파수(455kHz)로 변환하도록 LO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신기의 내부에서는 언제나 동일한 주파수(IF)만 처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중간 주파수는 라디오마다 정해진 표준값을 가집니다. AM 라디오는 주로 455kHz, FM 라디오는 10.7MHz 등이 많이 사용됩니다.
중간주파수의 장점
중간주파수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간주파수를 고정시키면 여러 증폭과 필터 단계의 주파수 또한 고정시킬 수 있습니다. 과거 TRF 수신기는 주파수를 바꿀 때마다 여러 회로를 동시에 정밀하게 조정해야 했습니다. 슈퍼헤테로다인 방식에서는 로컬 오실레이터(LO)만 조정하면 됩니다. 나머지 단계들은 항상 동일한 중간주파수에 맞추어져 있으니 효율적이죠.
그리고 낮은 주파수가 되는 중간주파수는 증폭이 쉽고 안정적입니다. 트랜지스터나 진공관 같은 소자는 주파수가 너무 높으면 증폭률이 떨어지고 잡음이 증가하죠. 그렇지만 낮은 주파수에서는 제어가 쉽습니다.
낮은 주파수를 쓰니 고주파 회로에 필요한 정밀한 소형 부품을 줄일 수 있고, 저주파용 표준 소자를 활용할 수 있으니 회로를 간소화 하고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선택도(selectivity)를 높일 수 있습니다.
라디오에서 특정 방송국 신호만 골라내려면 좁은 대역폭의 필터가 필요한데, 필터의 대역폭은 중심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넓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높은 RF 주파수에서 좁은 필터 특성을 얻기는 어렵지만, 더 낮은 중간주파수로 변환하면 훨씬 뛰어난 선택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FM 방송이나 TV 신호처럼 좁은 채널 간격으로 신호가 밀집되어있는 경우, 중간주파수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물론 중간주파수 사용을 위해서 로컬 오실레이터와 믹서 회로가 추가되고, 이미지 주파수라는 원하지 않는 신호가 생길 우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RF 프론트엔드 필터로 이미지를 억제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얻는 이점이 워낙 커서 약간의 설계 복잡함은 기꺼이 감수할 만하였고, 결과적으로 슈퍼헤테로다인 구조는 한 세기 가까이 표준 수신기 설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라디오/통신 장비 IF 활용 예시
AM 라디오 수신기
AM 수신기는 보통 중간주파수 455kHz에서 동작하도록 설계됩니다. AM 방송국들은 540~1600kHz 범위에 분포해 있습니다. 수신기는 튜닝 다이얼에 따라 안테나 신호를 받아들이고 항상 455kHz 차이를 내는 로컬 오실레이터 신호와 혼합합니다. 455kHz 신호만 통과시키는 IF 필터를 사용하여 어떤 주파수를 들어도 수신기의 핵심 증폭, 검파부(복조기)는 동일한 특성으로 동작하게 됩니다.
455kHz는 전 세계적으로 AM 라디오의 사실상 표준 IF가 되었습니다(디펙토 표준).
FM 라디오 수신기
FM 라디오 수신기는 중간주파수로 약 10.7MHz를 널리 사용합니다. FM 방송 대역은 88~108MHz로 AM보다 훨씬 높은 주파수를 다루는데요, 10.7MHz로 변환하면 증폭과 필터링이 수월해집니다. 100 MHz FM 방송을 들으려면 LO를 110.7MHz로 맞추어서 10.7MHz 신호를 만드는 것이죠. FM 수신기는 10.7MHz 대역에서 매우 좁은 대역으로 신호를 걸러내고, FM 전용 복조 회로로 원음을 복원합니다. 이 방식으로 인접 채널 간의 간섭을 방지하고 깨끗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무선 통신 장비
텔레비전 수신기도 중간주파수를 활용했습니다. 미국식 NTSC의 경우에는 약 45 MHz, 유럽식에서는 약 38.9MHz를 중간주파수로 사용했습니다.
위성통신 수신기에선 수 GHz에 달하는 고주파 위성 신호를 약 70MHz 대역으로 변환하여서 처리합니다.
휴대전화와 무선 LAN 등의 장비도 내부적으로 하나 이상의 IF 단계를 거쳐 신호를 처리합니다. 일부 휴대폰은 직접 변환 수신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엔 노이즈와 간섭을 줄이기 위해 중간 주파수를 거치는 이중 변환 구조를 활용합니다.
이처럼 중간주파수 변환 기술은 거의 모든 무선 통신 장비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됩니다.
슈퍼헤테로다인 수신기는
"필요한 신호만 골라서 낮은 주파수로 바꾼 뒤 증폭하고 해독(복조)한다." 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이 신박한 아이디어는 100여 년 전에 고안되었고 라디오, 텔레비전, 위성 통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용되었습니다. 무선 수신기의 기본 구조로 자리 잡았죠.
물론 현대에는 디지털 신호처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SDR과 같이 중간단계 없이 곧바로 디지털로 변환하는 수신기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SDR도 혼합을 통해 여러 중간 대역으로 분할하는(RF -> IF -> baseband -> ADC) 등 기본적으로 슈퍼헤테로다인의 연장선 아이디어를 활용합니다.
슈퍼헤테로다인은 간단한 아이디어면서도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안정적이라 현대 통신 시스템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